[번잡함 없는 남도의 힐링 사찰, 장흥 보림사]
남도의 산세가 부드럽게 이어지는 가지산 남쪽 기슭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걸음이 느려지는 사찰이 모습을 드러낸다. 봉덕계곡 안쪽에 자리한 보림사는 화려한 수식어보다 고요한 공기로 먼저 기억되는 곳이다. 오래 머무르지 않아도 공간이 주는 여운이 길게 남아, 장흥 여행 중 잠시 들렀을 뿐인데도 다시 떠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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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한국관광공사 |
보림사는 우리나라 선종 불교가 처음 자리 잡은 사찰로 전해진다. 8세기 중반, 원표대덕이 이곳에 머물며 수행 터를 마련한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이곳은 선종 수행의 거점으로 기능하며 남도 불교사의 흐름 속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인도와 중국, 한국을 잇는 동양 3대 보림 가운데 하나로 언급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긴 세월 동안 보림사가 겪어온 시간은 평탄하지 않았다. 조선시대 불교 억압 정책 속에서 사찰은 점차 위축됐고, 한국전쟁을 거치며 많은 전각과 유물이 훼손됐다. 한동안 옛 모습을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흔적만 남았지만, 이후 복원 과정을 거쳐 현재의 경내 구성이 갖춰졌다. 그래서인지 이곳은 인위적으로 정리된 느낌보다는, 시간의 층위가 자연스럽게 겹쳐진 인상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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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한국관광공사 |
경내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시선을 끄는 요소는 두 기의 삼층석탑과 그 사이에 놓인 석등이다. 남과 북을 향해 마주한 석탑 사이에 석등이 자리한 구조는 보기 드문 배치로, 사찰 공간의 중심을 단번에 드러내고 있다.
이 석탑에는 부처의 진신사리가 봉안돼 있으며, 가운데 석등은 부처의 가르침이 사방으로 퍼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세 유물 모두 국보로 지정돼 있고, 조성 시기는 9세기 후반으로 전해진다. 별다른 설명 없이 마당에 서 있기만 해도 공간 전체가 하나의 상징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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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장흥군 공식 블로그 |
보림사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국보는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이다. 9세기 중엽, 김언경이 자신의 녹봉을 모아 조성한 이 불상은 현존하는 철불 가운데에서도 중요한 사례로 평가된다.
단단한 재질에서 오는 묵직함과 절제된 조형은 화려함과는 다른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가까이에서 마주하면 장식보다 형식과 비례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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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림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 사진 = 국가유산청 |
경내 곳곳에는 이 외에도 보물급 문화재가 남아 있다. 보조선사 창성탑과 창성탑비, 동부도와 서부도 등은 특정 지점에 모여 있지 않고 동선을 따라 자연스럽게 배치돼 있다. 그래서 보림사는 빠르게 훑고 나가기보다 천천히 걸으며 마주칠수록 깊이가 드러난다.
사찰 마당 한편에는 오래전부터 마르지 않는다고 전해지는 약수터가 자리하고 있다. 극심한 가뭄에도 물이 끊이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보림사의 연기 설화와 함께 전해지며, 지금도 방문객들이 잠시 머무르며 시선을 두는 공간이 된다. 화려한 안내문 없이도 자연스럽게 발길이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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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장흥군 공식 블로그 |
보림사를 감싸고 있는 비자나무 숲 또한 인상적이다. 500그루가 넘는 비자나무 가운데에는 수령이 300년을 넘긴 나무도 포함돼 있다. 숲길을 따라 걷다 보면 발밑의 흙길과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 소리가 어우러지며, 사찰 경내와는 또 다른 결의 시간을 만든다. 이 숲길은 별도의 동선처럼 느껴지기보다 사찰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대적광전과 천왕문, 영각, 요사채 등 현재 남아 있는 전각들은 과장되지 않은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장식보다 구조가 먼저 눈에 들어오고, 색감 역시 주변 자연과 크게 튀지 않는다. 사천왕문 안에 봉안된 사천왕상은 18세기 후반에 조성된 목각상으로, 최근 중수를 거쳐 안정된 인상을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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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림사 목조사천왕상 | 사진 = 한국관광공사 |
보림사는 규모로 기억되기보다는 분위기와 밀도로 남는 사찰이다. 국보급 문화재를 품고 있으면서도 부담 없이 걸을 수 있고, 남도 여행 중 잠시 흐름을 낮추기에 적절한 공간으로 자리한다. 문화재를 보는 시간과 숲을 걷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경험은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징이다.
[방문 정보]
- 주소: 전라남도 장흥군 유치면 보림사로 224
- 이용시간: 상시 개방
※ 18:00 이후 제한적 이용
- 휴일: 연중무휴
- 주차: 가능(무료)
- 입장료: 무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