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가을 여행]
가을이 찾아오면 서울 도심 한가운데 자리한 덕수궁은 한층 더 특별한 분위기를 드러낸다. 조선의 마지막 궁궐이자 대한제국의 첫 황궁이었던 이곳은 은은한 단풍빛이 전각과 어우러지며 도심 속에서 가장 고즈넉한 가을 산책길을 선사한다.
궁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나무들이 드리우는 황금빛 그늘이 방문객을 맞이하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면 전통 건축과 서양식 석조건물이 한 화면에 담기는 독특한 풍경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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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이범수 |
덕수궁의 역사는 임진왜란 이후 경복궁이 소실된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경운궁이라는 이름으로 임시 행궁 역할을 하던 곳은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며 황궁으로 승격되었고, 이때부터 근대적 건축 요소가 본격적으로 도입됐다.
석조전이 대표적인 예다. 서양 건축 양식을 적극 반영해 세워진 석조전은 조선 궁궐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어 덕수궁을 상징하는 전각으로 꼽힌다.
가을이 되면 이러한 건축물 사이로 단풍이 깃들어 더욱 풍부한 장면을 만든다. 석조전 뒤편으로 이렇게 넓게 펼쳐지는 은행나무 군락은 노란 잎이 떨어질 때마다 마치 황금빛 비가 내리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전통양식의 중화전과 근대식 석조전이 단풍을 배경으로 함께 담기는 모습은 오직 덕수궁에서만 만날 수 있는 독특한 가을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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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수궁 석조전 | 사진 = ⓒ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이범수 |
가을 산책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는 돌담길이다. 덕수궁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한결같이 고요하며 걸음이 자연스럽게 느려지는 공간이다.
돌담 너머로 보이는 전각들의 지붕선과 바람에 흔들리는 단풍이 교차하며, 도심 속이라는 사실을 잊게 만든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이어지는 정동길까지 함께 걸으면 가을의 색을 보다 길게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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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수궁 돌담길 | 사진 = ⓒ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김지호 |
궁 안쪽을 따라 이어지는 탐방 동선도 매력적이다. 전각 사이로 부드러운 경사를 따라 걸으면 어느 지점에서든 단풍이 시선에 걸린다.
석조전 앞 잔디광장은 사진을 남기기 좋은 장소로 많은 이들이 가을마다 찾는다. 햇볕이 좋은 날에는 잔디에 드리운 나무 그림자가 더욱 선명해져 가을의 분위기가 깔끔하게 살아난다.
중명전과 돈덕전 역시 내부 관람이 가능해 궁궐의 근대사를 함께 배울 수 있는 의미 있는 동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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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이범수 |
덕수궁의 가장 큰 매력은 규모가 크지 않아 부담 없이 둘러볼 수 있다는 점이다. 궁궐 전체를 천천히 산책해도 1시간 남짓이면 충분하며, 짧은 시간에 가을 분위기를 깊게 느끼기에 더없이 좋은 구조다.
점심시간이나 주말 오후에 가볍게 들르기에도 적당해 많은 시민들이 ‘가까운 가을 여행지’로 선택한다. 무엇보다 입장료가 부담되지 않아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다시 찾는 이들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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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김지호 |
도심 속에서 만나는 가을 풍경은 멀리 떠나는 여행과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닌다. 전각과 석조건물, 단풍과 은행잎, 돌담길의 고요함이 한 번에 어우러지는 덕수궁은 바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을 때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장소다.
단돈 천 원으로 즐기는 가을 여행지라는 말이 괜히 붙는 것이 아니다. 한 시간이라는 짧은 산책만으로 계절의 깊이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곳, 그것이 덕수궁의 가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