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년의 세월을 버틴 칠곡의 거목, 말하는 은행나무]
경상북도 칠곡군 기산면 지산리에 서 있는 ‘말하는 은행나무’는 천 년의 세월을 견뎌온 생명의 상징이다. 수령 1,000년이 넘는 이 거목은 높이 약 30m, 둘레 7m에 달하며, 가지가 사방으로 퍼져 하나의 숲처럼 보인다. 멀리서 바라봐도 그 존재감이 압도적이다. 오래된 줄기에는 세월의 흔적이 켜켜이 새겨져 있고, 그 모습은 마치 시간 자체가 형상화된 듯한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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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한국관광공사(칠곡군청 문화관광과) (이하 동일) |
이 나무가 심어진 시기는 고려 현종 9년(1018년)경으로 추정된다. 당시 이 일대에는 신라 시대에 세워진 대가람 ‘대흥사’가 있었다. 사찰이 사라진 자리 위에 남은 이 나무는 천 년 동안 풍파를 이겨내며 마을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줄기가 오른쪽으로 자연스럽게 비틀린 형태를 띠고 있어 그 모습만으로도 독특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이 나무를 신성하게 여겨 마을의 수호목으로 삼았으며, 지금도 주민들은 나무 앞에서 소원을 빌며 평온을 기원한다.
가을이 되면 이곳은 황금빛 세상으로 변한다. 다른 지역보다 단풍이 늦게 물드는 편이라 11월 중순이 되면 은행잎이 절정의 빛을 낸다. 햇살이 가지 사이로 스며들면 잎사귀 하나하나가 금빛으로 반짝이고, 바람이 불면 수천 장의 노란 잎이 흩날리며 나무 아래로 쏟아진다. 그 아래에는 황금빛 융단이 깔린 듯 잎이 수북이 쌓여,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발걸음을 멈추게 만든다.
‘말하는 은행나무’라는 이름에는 신비로운 전설이 담겨 있다. 옛날 큰 가뭄이 들었을 때, 마을 사람들이 이 나무 아래에서 비를 기원하면 며칠 지나지 않아 비가 내렸다고 전해진다. 또한 간절한 마음으로 소원을 빌면 나무가 그 바람을 들어주었다는 이야기도 이어져 내려온다. 지금도 방문객들은 나무 앞에 서서 조용히 손을 모으고, 각자의 소망을 마음속으로 되뇌며 기도의 시간을 가진다. 나무 앞에는 ‘소원 기도석’이 놓여 있어 여행자들이 간단히 염원을 남길 수도 있다.
은행나무 주변은 정비가 잘 되어 있어 산책하듯 둘러보기 좋다. 나무 근처에는 작은 정자가 마련되어 있어 쉼터로 이용하기 좋고, 안내문에는 나무의 역사와 전설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주차 공간은 약 10대 정도로 넉넉하진 않지만, 평일에는 한적해 여유롭게 머물 수 있다. 주말이면 가족 나들이객과 사진가들이 찾아와 드론으로 촬영하거나, 나무 아래에서 황금빛 배경으로 인생 사진을 남긴다.
봄에는 연둣빛 새잎이 돋아 생명의 기운을 느낄 수 있고, 여름에는 짙은 그늘이 드리워 시원한 휴식처가 된다. 그러나 이 나무의 진면목은 단연 가을이다. 붉은 하늘빛과 어우러진 황금 잎이 마을 전체를 물들이며, 그 아래에서 맞이하는 노을은 잊을 수 없는 장면으로 남는다. 천 년의 세월 동안 수많은 계절을 맞이했을 이 나무는, 오늘도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며 사람들의 소망을 듣고 있다.
주소는 경상북도 칠곡군 기산면 지산로 331이다. 입장료 없이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으며, 연중무휴로 개방된다. 나무 앞에 서면 도심의 소음이 사라지고, 오직 바람과 잎의 속삭임만 들린다. 오랜 시간과 자연이 만들어낸 이 고요한 풍경 속에서 잠시 머물다 보면, 천 년의 시간이 우리 곁에 여전히 살아 있음을 느끼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