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남원의 특별한 나무]
지리산의 깊은 품속, 뱀사골을 따라 걷다 보면 전설처럼 느껴지는 나무 한 그루를 마주하게 된다.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와운마을 뒷산의 석실바위를 지나 좌측 숲길로 약 700미터를 더 올라가야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는 이 나무는 수령 500년 이상으로 추정되는 소나무다. 마을 사람들과 등산객들 사이에서는 ‘천년송’이라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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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김지호 |
천년송은 규모부터 압도적이다. 나무의 높이는 약 20미터, 둘레는 6미터, 가지 너비는 12미터에 달한다. 전체 형태는 마치 부드럽게 펼쳐진 우산처럼 둥글고 안정적인 곡선을 이루며, 한참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조용히 가라앉는다. 숲속에 홀로 서 있지만 외롭지 않고, 오히려 그 자리에 오래도록 머무른 이유를 고요하게 들려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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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김지호 |
이 소나무는 단순한 오래된 나무가 아니다. 지역 주민들은 이 나무를 ‘할매송’이라 부르며, 오래전부터 마을의 안녕을 지켜주는 존재로 여겨왔다. 인근에는 ‘한아시송’이라 불리는 또 다른 노거수가 서 있으며, 이 둘은 부부나 다름없는 존재로 간주되어 매년 정월이면 당산제가 열려왔다. 제사를 주관하는 제관은 섣달 그믐부터 외출을 삼가고, 계곡에서 목욕재계 후 정성껏 제사를 준비한다고 한다. 이처럼 천년송은 전통과 신앙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의 중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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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김지호 |
천년송에는 특별한 사연도 전해진다. 현재 거문도에 거주하는 김항신 씨는 부모가 이 나무 아래에서 간절한 기도를 드린 뒤 태어났다고 믿으며, 지금도 해마다 직접 찾아와 제사를 지낸다. 오랜 세월 동안 누군가의 삶을 지탱해 준 나무이자, 간절한 마음을 품어주는 기도처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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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김지호 |
‘구름도 누워 쉬어간다’는 뜻을 가진 와운마을의 이름처럼 천년송이 자리한 숲길은 실제로 구름과 안개가 자주 머무는 곳이다. 이른 아침에 찾으면 나무 주변에 희뿌연 안개가 드리워져 마치 민담 속을 걷는 듯한 몽환적인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흔한 산책길과는 확연히 다른 정적과 깊이를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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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김지호 |
천연기념물 제424호로 지정된 이 나무는 문화재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시간이 만든 살아 있는 풍경 그 자체다. 뱀사골 국립공원 주차장에서 출발해 석실바위를 지나 약간의 오르막을 더 걸으면 닿을 수 있는 이 장소는 누구에게나 깊은 울림을 남긴다. 바람, 시간, 마음이 머무는 지리산의 쉼터이기도 한 이곳의 천년송은 말없이 그 자리를 지키며, 당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