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주시, 죽계구곡]
순흥면의 산자락을 따라 이어진 이 계곡길은 가을이 깊어질수록 색이 진해지며, 물소리와 단풍이 함께 어우러진 풍경으로 여행객을 맞이한다. 길 초입에 발을 들이는 순간, 흙냄새와 계곡의 습기가 은은하게 퍼지고, 주변을 채운 숲은 계절의 변화가 그대로 드러나는 자연의 무대가 된다. 바람이 스칠 때마다 나뭇잎이 천천히 흔들리며 걷는 이들의 속도를 자연스럽게 늦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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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앙지뉴 필름 |
죽계구곡은 구곡문화의 정신이 남아 있는 대표적인 계곡길이다. 아홉 굽이를 뜻하는 ‘구곡’은 선비들이 산수를 따라 걸으며 사유를 정리하고 마음을 다스리던 길을 의미하는데, 이곳은 소백산 깊은 곳에서 시작해 초암사 앞 제1곡에서 제9곡 이화동까지 이어진다. 물길을 따라 굽이치는 지형과 바위마다 담긴 이야기가 조화를 이루고 있어 단순한 계곡 산책을 넘어 자연과 사람이 함께 쌓아온 흔적을 느끼게 한다.
가을이 절정에 이르면 이 숲길은 색의 농도부터 전혀 달라진다. 바람에 실린 낙엽이 계류 위로 떨어지고, 투명한 물빛 위로 햇살이 잔잔히 반사되며 한층 차분한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물 흐르는 소리는 지지지 않는 배경음처럼 이어지고, 구간마다 바위가 만들어낸 작은 수로가 있어 걷는 동안 풍경이 단조롭지 않다. 숲과 물이 가까이 있어 계절의 향과 소리가 자연스럽게 뒤섞이며 길 전체가 가을빛으로 가득 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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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앙지뉴 필름 |
탐방로는 길이 크게 험하지 않아 가벼운 산책부터 본격적인 트레킹까지 모두 소화할 수 있다.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각 굽이마다 이름이 붙은 바위와 정자터가 등장하는데, 퇴계 이황 선생이 남긴 흔적이라는 이야기가 더해져 길 자체의 의미가 깊어진다. 바위 위에 새겨진 글귀와 계곡 주변에 자리한 작은 쉼터들은 선비들이 자연을 벗 삼아 지혜를 구하던 풍경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가을의 죽계구곡은 풍경의 변화가 두드러진다. 초입에서는 노란빛이 강한 은행나무들이 먼저 눈에 띄고,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붉은 단풍잎이 수면을 물들이며 숲의 분위기가 한층 진해진다. 이 계절에는 숲의 색이 균형 있게 섞여 있어 사진을 찍기에도 좋고, 바람에 흔들리는 단풍잎이 계곡물 위로 떨어지며 만드는 작은 흐름이 특별한 장면을 완성한다. 물 위를 스치는 낙엽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순간은 이 길에서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한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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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앙지뉴 필름 |
코스 전체는 약 3.5km로 길지 않지만, 굽이가 바뀔 때마다 다른 풍경이 펼쳐져 짧게 느껴지지 않는다. 초암사와 금당반석을 지나면 물길이 넓게 퍼지는 구간이 나타나고, 바위 사이로 떨어지는 물줄기가 작은 폭포처럼 보이는 곳도 있다.
맑은 가을날에는 물 위에 떠 있는 산세가 선명하게 비치며, 계곡 양옆으로 이어지는 단풍이 자연의 색채를 더욱 깊게 만든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천천히 걸으면 선비들이 왜 이 길을 사랑했는지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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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앙지뉴 필름 |
단풍철에는 방문객이 많아지지만, 계곡의 넓은 길 덕분에 걷는 데 큰 불편이 없다. 중간중간 앉아 쉴 수 있는 바위와 평지가 자연스럽게 나타나 가족 단위 여행객도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다. 특히 아침 시간대에는 물안개가 얇게 깔리며 몽환적인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오후에는 햇빛이 계곡을 따라 기울어지며 숲이 한층 따뜻한 색감을 띠게 된다. 어느 시간대에 방문해도 각기 다른 계절의 느낌을 경험할 수 있다.
이곳은 인공적인 조성이 거의 없어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주말의 붐빔 속에서도 계곡의 소리와 숲의 분위기는 크게 변하지 않으며, 길 전체가 자연이 들려주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가을의 정취가 가장 깊게 스며드는 이 시기, 죽계구곡은 걷는 순간순간이 풍경이 되는 길로 여행객을 이끈다. 단풍이 짙게 물든 숲길과 잔잔한 물소리가 함께하는 이 길은 늦가을의 여운을 오래 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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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영주시 공식 블로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