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여수시, 향일암]
돌산읍의 산허리를 따라 이어진 길을 걷기 시작하면 서서히 바다의 냄새가 바람을 타고 올라온다. 초입에서는 숲의 기운이 짙게 느껴지지만, 조금씩 고도를 높일수록 남해가 시야에 들어오며 길 자체가 하나의 조용한 순례처럼 이어진다. 향일암은 천년이 넘는 시간을 품은 사찰로 절벽 끝에 자리해 바다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해를 마주할 수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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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라이브스튜디오 |
이 사찰의 역사는 통일신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효대사가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고 이곳에 암자를 세운 것이 시작이며, 긴 세월 동안 이름과 모습이 변해왔지만 바다를 향해 열린 풍경만은 변하지 않았다. 현재의 전각들은 화재 이후 복원된 것이지만, 원형의 구조와 산사의 정취를 최대한 살려 세워져 있어 오랜 기록을 품은 듯한 안정감을 지니고 있다. 천천히 걷다 보면 사찰이 산의 품 안에 조용히 자리한 이유를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향일암의 가장 큰 매력은 오르는 길 자체에 있다. 주차장에서 약 40분 정도 걸어야 도착하는데, 탐방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천천히 오를 수 있다. 길은 완만하지만 단순하지 않다. 자연 암반을 그대로 살린 계단과 나무 데크가 번갈아 나타나고, 오르는 중간마다 바다를 향해 열린 작은 전망 지점이 이어져 걸음을 멈추게 한다. 길을 따라 이어지는 숲길은 계절마다 다른 색을 보여 늦가을에도 쓸쓸함보다 따뜻함이 먼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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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라이브스튜디오 |
오르막의 중간쯤에 이르면 ‘해탈문’이 모습을 드러낸다. 작고 소박한 구조의 문이지만, 이 문을 지나면 시야가 갑작스레 탁 트이며 바다 위로 이어지는 수평선이 한눈에 펼쳐진다.
그 순간의 변화는 향일암으로 향하는 여정 중 가장 강렬한 장면이다.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어딘지 모호해지는 날에는 마치 공중을 걷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며, 방향을 바꾸어 뒤돌아보면 방금 걸어온 숲길이 고요하게 이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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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김지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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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김지호 |
문을 지나 다시 몇 분 정도 오르면 사찰의 전각들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다. 대웅전 앞마당에 서면 바다를 향해 열린 공간이 한눈에 들어온다. 절벽 위에 자리한 전각과 그 아래로 펼쳐진 푸른 바다는 하나의 화면처럼 이어져, 사찰을 둘러보는 동안 자연이 만들어낸 풍경이 배경이 되어준다. 바람이 부드럽게 불어오는 시간대에는 파도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 마음이 차분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향일암은 해돋이 명소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겨울철 새해 첫날이면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태양을 보러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 해가 떠오르는 순간 전각들이 붉은 빛을 머금고, 바다 전체가 황금빛으로 번지는 장면은 해마다 새로운 감동을 준다. 사진으로 본 풍경보다 훨씬 압도적이어서, 실제로 방문한 이들은 다시 찾고 싶어지는 경험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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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라이브스튜디오 |
해 질 무렵의 풍경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붉게 물든 노을이 절벽 아래를 감싸고 바다 위에 길게 내려앉아 시간의 흐름조차 잊게 만든다. 낮에는 힘차고 맑았던 바다가 저녁이 되면 차분한 색을 띠며 사찰의 전각들과 조화를 이룬다. 일몰을 보기 위해 찾아오는 이들도 많아, 여유롭게 시간을 두고 머물기 좋은 명소다.
부모님과 함께하는 여행지로 추천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르막이 길지만 급격한 구간이 거의 없어 천천히 오르면 무리 없이 도착할 수 있다. 중간중간 앉아 쉴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어 세대와 상관없이 방문하기 좋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들리는 목탁 소리와 파도 소리가 자연스럽게 뒤섞이며 하루의 피로가 잦아드는 기분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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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김지호 |
향일암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자연과 시간이 함께 만든 명상 공간 같은 장소다. 절벽 위라는 독특한 지형 덕분에 사찰을 둘러보는 내내 바닷바람이 따라오고, 어느 방향을 바라보더라도 남해의 넓은 풍경이 함께한다. 걷고 오르고 바라보는 모든 과정이 여행 자체가 되고, 오랜 시간을 품은 건물들은 그 여정의 끝에서 조용한 위로를 건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