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고성군, 화암사]
토성면의 산자락을 따라 길을 오르면 깊은 숲 사이로 고찰의 지붕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가을이 절정에 이른 지금, 이 길은 노란빛과 갈색이 뒤섞인 단풍으로 가득해 천천히 걸어 올라가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분위기를 만든다. 고성이라는 지역 특유의 맑은 공기와 산세가 더해져, 도심과는 전혀 다른 계절감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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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강원지사 모먼트스튜디오 (이하 동일) |
화암사는 신라 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알려진 유서 깊은 사찰이다. 긴 역사 속에서 여러 번 소실과 중건을 거쳤지만, 주변 자연과 어우러진 모습은 오랜 세월 큰 변화를 겪지 않고 이어져 내려왔다. 가을철 이곳이 특히 사랑받는 이유는 계절의 색이 사찰 전각과 절묘하게 어울려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붉은 단풍보다 노란빛이 강한 올해의 숲은 산사의 차분한 기운과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며 더욱 따뜻한 인상을 준다.
산길을 오르기 시작하면 처음엔 가벼운 오르막이 이어지지만, 길 자체는 크게 험하지 않아 누구나 편하게 걸을 수 있다. 초입에서는 은행잎이 두껍게 쌓여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고, 햇빛이 스며드는 구간에서는 단풍잎의 색감이 한층 밝아져 마치 길 전체가 빛을 머금은 듯한 모습이 펼쳐진다. 일정한 간격으로 이어지는 나무들은 자연이 만든 터널처럼 보이며, 계절마다 달라지는 고성의 산세와 조화를 이룬다.
가을 아침 일찍 도착하면 운해가 산허리를 감싸는 장면을 만날 확률이 높다. 한쪽에서는 산 능선 위로 해가 떠오르고, 다른 한쪽에서는 숲 안개가 천천히 걷히며 몽환적인 풍경을 만들어낸다. 단풍철에는 이 시간대를 노리고 방문하는 여행객들도 많다. 트레킹을 좋아하는 이들은 제1주차장부터 시작하는 길을 선호하는데, 산책하듯 이동하면서 계절의 변화를 온전히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찰 경내에 들어서면 화암사가 오랜 시간 동안 지켜온 고요함이 진하게 전해진다. 복잡한 장식 대신 자연과 잘 어울리는 구조가 특징이며, 주변 풍경과의 조화가 두드러진다. 전각 사이로 스며드는 단풍빛은 깊은 가을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담아내어, 잠시 서 있기만 해도 사찰이 가진 정적이 자연스럽게 전달된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특히 감탄하는 장소는 미륵전이다. 전각에 오르면 고성의 산과 바다가 한눈에 이어지는 풍경이 펼쳐지는데, 날씨가 맑은 날에는 속초 시내와 장사항, 설악산 울산바위까지 시야에 들어온다. 산과 바다, 도시가 한 화면에 담기는 이 장면은 지역의 지형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해 방문객들이 오래 기억하는 순간이 된다. 바람이 잔잔한 날에는 산세가 선명하게 드러나며 경계가 뚜렷해지고, 흐린 날에는 안개가 부분적으로 남아 부드러운 색감의 풍경을 만든다.
미륵전 뒤편으로 이어지는 수바위 역시 화암사의 대표적인 명소다. 바위 정상에는 작은 웅덩이가 있어 오랜 시간 동안 물이 고여 있는 모습이 인상적인데, 마르지 않는 물을 둘러싼 전설과 이야기가 남아 있어 이 길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바위를 오르는 길은 짧지만 주변이 탁 트여 있어 단풍철에는 주변 숲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산길을 내려오며 다시 천천히 걸음을 옮기면 단풍잎 사이로 스며드는 빛이 하루 중 가장 부드럽게 보이는 시간대가 찾아온다. 숲 전체가 황금색에 가까운 톤으로 물들어, 트레킹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풍경의 여운이 길게 남는다. 짧은 이동으로도 충분히 깊은 숲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 가을 여행지로서 높은 만족도를 주는 곳이다.
가을의 끝자락에 접어든 지금도 화암사의 산길은 여전히 걷기 좋다. 산사의 조용한 공기와 숲이 만든 풍경은 스트레스로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휴식을 찾는 이들에게 적합하다. 걷는 속도에 맞춰 곁을 스치는 단풍빛과 계절의 냄새는 자연이 주는 위안으로 다가오며, 잠깐의 트레킹만으로도 가을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경험을 선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