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m 인공섬 위에 뿌리내린 생명의 상징,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
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임하댐 인근의 평화로운 마을 자락에 천 년 가까운 세월을 지켜온 거목이 서 있다. 바로 천연기념물 제175호로 지정된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다. 높이 약 47미터, 가슴높이 둘레 14미터에 달하는 이 나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굵은 은행나무로 알려져 있으며, 수령은 700년을 훌쩍 넘는다. 그 웅장한 자태는 세월을 이겨낸 생명의 위엄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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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정용현 |
원래 이 은행나무는 용계초등학교 운동장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그러나 1970년대 임하댐 건설로 인해 마을 일부가 수몰 지역으로 지정되자, 나무 역시 물에 잠길 위기에 놓였다. 그때 마을 주민들은 단 한 그루의 나무를 살리기 위해 놀라운 결정을 내렸다. 흙을 높이 쌓아 약 15미터의 인공섬을 만들고, 그 위에 나무를 옮겨 심은 것이다. 자연의 일부를 지키기 위해 마을이 하나로 뭉친 결과, 지금의 용계리 은행나무가 존재하게 되었다.
이 은행나무를 보기 위해서는 도로 옆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짧은 다리를 건너야 한다. 다리를 건너는 순간, 물 위로 우뚝 솟은 거대한 나무가 눈앞에 펼쳐진다. 바람이 불면 노랗게 물든 잎이 흩날리며 수면 위에 부드럽게 떨어지고, 그 풍경은 마치 신화 속 장면처럼 황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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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디엔에이스튜디오 |
가을이 되면 이곳은 더욱 특별해진다. 나무 전체가 금빛으로 물들고, 주변의 단풍나무와 어우러져 붉고 노란 빛의 향연이 펼쳐진다. 햇살이 비추면 은행잎이 반짝이며 빛을 흩뿌리고, 잎이 떨어져 땅을 덮을 때면 황금빛 융단이 깔린 듯한 풍경이 만들어진다. 이때가 되면 사진가들과 여행자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어 나무를 배경으로 아름다운 장면을 담는다.
용계리 은행나무에는 오래된 이야기도 전해 내려온다. 조선 선조 때 훈련대장이었던 탁순창이 서울에서 내려와 지역민과 함께 ‘은행나무 계’를 만들어 나무를 보호했다고 한다. 그들은 매년 음력 7월, 나무 아래에서 제를 올리고 친목을 다졌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마을이 사라졌지만 탁씨의 후손들은 여전히 제사를 이어가며, 이 나무를 조상의 정신이 깃든 신목(神木)으로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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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디엔에이스튜디오 |
세월의 흔적이 가득한 줄기와 두꺼운 뿌리는 자연의 강인함을 보여준다. 수백 년 동안 비바람과 눈보라를 견디며 여전히 푸르게 생명을 이어가는 모습은 보는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봄에는 새순이 돋고, 여름에는 짙은 녹음이 드리워진다. 그리고 가을에는 금빛으로 변해 절정을 이루며, 겨울에는 나목의 고요한 실루엣으로 또 다른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는 마을 공동체의 정신과 자연 보호의 상징이다. 한 그루의 나무를 위해 사람들이 힘을 모았던 이야기는 지금도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큰 감동을 준다. 천 년 가까이 그 자리를 지켜온 나무는, 변함없이 계절마다 새로운 얼굴로 사람들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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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디엔에이스튜디오 |
입장료는 없으며 연중 언제나 방문할 수 있다. 주차공간이 마련되어 있고, 산책하듯 천천히 다리를 건너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다. 가을 단풍철에는 조금 붐비지만, 이 시기의 풍경은 그만큼 특별하다. 자연의 생명력과 사람들의 마음이 한데 어우러진 이곳에서, 세월의 깊이를 고요히 느껴보는 것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