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의 숨은 가을 보석]
‘운곡서원 유연정 은행나무’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사라길, 조용한 시골 마을 한가운데 오래된 서원이 자리하고 있다. 운곡서원이라 불리는 이곳은 안동 권씨의 시조 권행을 비롯해 조선시대 인물 권산해, 권덕린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평소에는 고요한 학문의 공간이지만, 가을이 찾아오면 전혀 다른 풍경으로 변한다. 수백 년의 세월을 견뎌온 거대한 은행나무 한 그루가 황금빛으로 물들며 이곳을 경주의 숨은 가을 명소로 바꿔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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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안용관 |
운곡서원 입구를 지나면 정갈한 돌담길이 이어지고, 그 끝에서 유연정이라는 아담한 정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바로 이 정자 앞에 서 있는 은행나무가 방문객들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수령 약 400년으로 추정되는 이 나무는 굵은 줄기에서 사방으로 가지를 뻗으며 하늘을 가득 채운다. 잎이 완전히 물드는 11월 초순이 되면, 정자 주변은 온통 노란빛으로 뒤덮이고, 바람이 불면 황금빛 잎이 비처럼 흩날린다. 그 아래를 걷는 사람들은 자연스레 발걸음을 늦추며 고요한 가을의 정취에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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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경주문화관광 |
햇살이 비치는 오후 시간대에는 풍경이 특히 아름답다. 나무 위로 내려앉은 빛이 잎사귀 사이를 통과하며 반짝이고, 땅 위에는 낙엽이 두껍게 쌓여 마치 금빛 융단을 깔아놓은 듯하다. 은행잎이 바람에 살짝 흔들릴 때면 잎의 그림자가 유연정의 기와지붕에 닿아 자연과 건축이 하나의 장면을 만든다. 이 장면은 카메라에 담으려는 사진가들에게 매년 인기 있는 피사체로, SNS에서는 “경주에서 가장 고요하고 아름다운 가을 장소”라는 평가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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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노명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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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경주문화관광 |
유연정은 조선 후기의 전통 목조건축 양식을 잘 간직한 정자로 기둥과 지붕의 선이 은행나무의 수형과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잔잔한 연못을 사이에 두고 바라보면, 정자와 나무가 서로의 존재를 완성시키는 듯한 조화를 이룬다. 정자 아래에 앉아 있으면 은행잎이 천천히 떨어지며 바람결에 머무는 소리가 들리고, 그 순간 계절의 흐름이 한눈에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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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경주문화관광 |
운곡서원은 규모는 크지 않지만, 담장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경주의 유명 사찰 못지않은 품격을 지닌다. 방문객 대부분은 정자 앞에서 잠시 머물며 사진을 찍고, 서원의 마당을 천천히 둘러본다. 은행잎이 수북이 쌓인 길을 따라 걷는 동안, 나무의 세월이 고스란히 전해져 마음이 차분해진다. 화려한 단풍보다 절제된 색의 아름다움을 지닌 이곳은 번잡한 도심을 벗어나 조용히 가을을 느끼고 싶은 사람들에게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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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SONI ADITYA PRAKASH |
입장료는 무료이며, 주차장은 서원 앞 도로변에 마련되어 있다. 소형 차량 약 80대를 수용할 수 있고 주차 또한 무료다. 연중무휴로 개방되어 있으므로, 날씨가 좋은 날이라면 언제든 가볍게 다녀올 수 있다. 특히 11월 초순의 절정기에는 오전 햇살이 비칠 때 가장 선명한 색감을 볼 수 있다. 이 시기에 맞춰 방문한다면, 경주의 어느 명소보다도 고요하고 깊은 가을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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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경주문화관광 |
운곡서원 유연정 은행나무는 단 하나의 나무로 가을을 설명할 수 있는 장소다. 400년 동안 그 자리를 지켜온 나무는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자연의 품격을 보여준다. 노란 잎이 흩날리는 그 순간, 오래된 서원의 정적과 어우러져 마음속에 오래 남는 장면이 완성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