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백산이 품은 천년 사찰, 영주 비로사]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소백산 남쪽 자락의 깊은 골짜기에 자리한 ‘비로사’는 천삼백 년 세월을 품은 고찰이다. 가을이면 사찰 전체가 붉고 노란 단풍빛으로 물들며, 자연이 그린 한 폭의 산수화를 연상케 한다. 상업적인 요소가 전혀 없고, 입장료나 주차비도 없어 조용히 산사의 정취를 느끼고 싶은 여행자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가을 여행지다.
![]() |
| 사진 = ⓒ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앙지뉴 필름 (이하 동일) |
비로사는 통일신라 문무왕 20년(680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불교의 깊은 전통과 소백산의 정기를 함께 품고 있다. 오랜 역사 속에서 수차례의 전란과 화재로 사찰은 무너지고 다시 세워지기를 반복했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승병들이 머물며 나라를 지켰던 장소로 기록되어 있다. 전쟁 이후 대부분의 건물이 불타버렸지만, 1609년 경희 스님이 법당을 중건했고, 1684년 월하 스님이 산신각 등 40여 칸을 세우며 사세를 되살렸다.
그 후 1907년 또 한 번의 화재가 있었고, 6·25 전쟁 중에도 피해를 입었다. 현재의 단정한 산사 모습은 1990년대 초 주지 성공 스님의 손길로 다시 복원된 것이다. 적광전과 나한전, 반야실, 망월당 등이 정갈하게 배치되어 있고, 주변의 고목과 단풍나무들이 계절마다 다른 색을 더한다. 사찰을 감싸고 선 나무들은 가을이면 붉은 잎을 내려 법당 지붕을 덮고, 그 위로 햇살이 비치면 고요한 공간 전체가 금빛으로 반짝인다.
비로사의 진정한 매력은 ‘조용함’이다. 관광객이 몰리는 다른 사찰과 달리, 이곳은 여전히 지역 주민들에게 더 익숙한 공간이다. 주말에도 붐비지 않으며, 가을철에도 산책하듯 천천히 걸으며 풍경을 즐기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경내를 따라 걷다 보면 오래된 석불과 석등이 나타나고, 그중에서도 석조아미타여래좌상과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은 국가 보물로 지정된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이 두 불상은 오랜 세월에도 온전한 형태를 간직하며, 고요한 산사의 중심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비로사를 둘러보는 길은 그리 길지 않다. 경내를 천천히 걸으면 약 30분 정도면 충분하지만, 단풍철에는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느려진다. 법당 뒤편으로 이어지는 숲길에서는 낙엽이 바람에 흩날리며 사찰 종소리와 어우러지고, 그 순간 마음까지 잔잔해진다. 사람의 소음보다 바람과 새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곳, 바로 비로사가 지닌 고요한 힘이다.
10월 중순부터 11월 초 사이가 단풍의 절정기다. 이 시기에는 비로사 경내 전체가 붉은빛으로 물들고, 담장 위로 떨어진 단풍잎이 바닥을 덮어 마치 붉은 융단을 펼쳐놓은 듯한 풍경을 만든다. 특히 오후 햇살이 사찰의 기와지붕에 닿을 때면 잎사귀마다 빛이 스며들어 황홀한 장면을 연출한다. 그 풍경을 보고 있으면, 오랜 세월을 견딘 산사의 숨결이 느껴진다.
비로사는 입장료와 주차비 모두 무료다. 상업시설이 거의 없고, 안내 방송조차 들리지 않아 오롯이 자연의 소리와 사찰의 고요함에 집중할 수 있다. 화려한 장식이나 조명 대신, 세월이 만든 빛과 색으로 가득한 곳이다. 주소는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삼가로 661-29이며, 일출부터 일몰까지 자유롭게 관람이 가능하다.
소백산의 품 안에서 천 년의 시간을 품은 비로사. 그 고요한 산사에서 단풍이 흩날리는 모습을 바라보면, 여행이 아닌 ‘쉼’ 그 자체를 경험하게 된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자연 속에서 마음이 가장 맑아지는 순간, 그곳이 바로 진짜 가을의 풍경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