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화천군, 비수구미생태길]
화천읍을 지나 산길로 들어서면 점점 주변이 비워지고, 어느 순간 소리마저 잦아드는 고요한 구간이 이어진다. 이 길의 끝에 자리한 비수구미는 외부와 연결된 도로가 사라진 뒤 지금까지도 자연 그대로의 시간을 품고 있는 마을이다.
물길과 산길로만 닿을 수 있어 쉽게 접근할 수 없지만, 그 불편함조차 이곳을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다.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순수한 자연의 형태가 남아 있어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듯한 감각을 느끼게 한다.
![]() |
| 사진 = ⓒ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강원지사 모먼트스튜디오 |
‘비수구미’는 신비로운 물이 만들어낸 아홉 가지 아름다움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구름이 흘러가는 모습, 물빛의 반짝임, 산나물의 향, 조용한 숲길, 호수에 머무는 바람, 출렁다리가 이어주는 이동로, 작은 배를 타고 가는 여정 등 자연과 사람이 남긴 이야기들이 합쳐져 마을의 이름 속에 녹아 있다. 곳곳에는 유래가 담긴 지명이 남아 있어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스토리를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 마을을 만나는 길은 두 가지다. 하나는 파로호에서 배를 타고 물길을 따라 들어가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해산터널을 지나 생태길을 따라 6km 정도 걷는 방법이다. 배를 이용하면 호수의 정적을 가까이서 느낄 수 있고, 트레킹을 선택하면 숲 속의 공기와 계곡 물소리, 작은 새들의 울음이 자연스러운 동반자가 되어 준다. 두 경로 모두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의 여정 자체가 하나의 경험이 된다.
![]() |
| 사진 = 온라인 커뮤니티 |
트레킹 길은 난도가 높지 않아 꾸준히 걷는다면 누구나 완주할 수 있다. 길을 따라 이어지는 계곡은 물빛이 유난히 맑아 바닥의 작은 돌들까지 선명하게 보인다. 햇살이 비추는 구간에서는 물결 위로 빛이 흔들리며 길 전체에 청량한 분위기를 더한다. 야생 난초와 들꽃이 듬성듬성 자리하고 있어 자연의 질감이 그대로 살아 있으며, 산천어가 계곡 사이를 오가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마주칠 수 있다.
숲길을 걷는 동안 가장 먼저 느끼게 되는 것은 공기의 변화다. 울창한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그늘 속으로 들어가면 온도가 자연스럽게 내려가고, 바람의 냄새가 달라진다. 계절이 깊어질수록 색이 한층 차분해져 늦가을에 찾아도 충만한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물길을 따라 이어진 길은 폭이 넓지 않지만 걷는 데 불편함이 없고,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가 계속 귓가에 머물러 트레킹 시간을 더 풍부하게 만든다.
![]() |
| 사진 = ⓒ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강원지사 모먼트스튜디오 |
마을에 다다르면 갑자기 시야가 넓어지며 작은 골짜기를 끼고 자리한 비수구미의 풍경이 펼쳐진다. 오래된 가옥과 작은 텃밭, 산에게 둘러싸인 지형은 마을 전체를 감싸는 듯한 안정감을 준다.
주민들이 운영하는 민박에서는 제철 산나물로 만든 정갈한 밥상을 맛볼 수 있고, 직접 지은 장으로 만든 음식들은 자연 그대로의 풍미를 전한다.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듯한 마을 풍경은 잠시 머무르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을 준다.
![]() |
| 사진 = 한국관광공사 |
![]() |
| 사진 = ⓒ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강원지사 모먼트스튜디오 |
이곳의 밤은 더욱 특별하다. 인공 조명이 거의 없는 덕분에 하늘의 별빛이 한층 선명하게 내려앉는다. 소리가 사라진 어둠 속에서 바라보는 별무리는 도시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풍경으로, 자연이 가진 본래의 조용함을 실감하게 한다. 소박하지만 깊이 있는 매력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는 이유이기도 하다.
비수구미는 화려한 시설이 없고, 접근도 쉽지 않지만 자연을 온전히 느끼고 싶은 여행자라면 꼭 한번 들러볼 만한 장소다. 걷는 동안 만나는 계곡물의 투명함과 숲의 향기는 일상에서 놓치고 지낸 감각을 일깨워주며, 도착했을 때 맞이하는 마을의 고요함은 이 길을 선택한 이유를 충분히 증명해 준다. 산책이든 트레킹이든, 이 길을 걷는 과정 자체가 여행의 목적이 되는 곳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