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문무대왕릉, 바다 위에 잠든 왕의 이야기]
경상북도 경주시 문무대왕면 봉길리에 위치한 문무대왕릉은 삼국통일의 주역, 신라 문무왕의 유언이 깃든 바다 속 무덤이다. “죽은 뒤에도 동해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왕의 뜻에 따라, 그의 유골은 바다 한가운데 있는 바위섬 대왕암에 안치되었다고 전해진다. 육지가 아닌 바다 속에 자리한 왕릉이라는 점에서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형태이며, 신라의 정신과 해양문화가 그대로 담긴 상징적인 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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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한국관광공사(다님 9기 서인호) |
문무대왕릉은 파도에 둘러싸인 바위섬 형태로, 멀리서 보면 거북이의 등을 닮았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대왕암에는 동서남북으로 십자 형태의 수로가 뚫려 있고, 중앙에는 유골을 모신 항(缸)이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바다 위에서 섬을 바라보면 네 방향으로 흐르는 물길이 마치 용이 하늘로 승천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이러한 구조 덕분에 문무왕이 바다의 용신이 되어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나라를 지킨다는 전설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대왕암은 육지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 날씨가 맑은 날이면 육안으로도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파도에 부서지는 물보라와 함께 우뚝 솟은 바위는 웅장하면서도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해안선을 따라 걷다 보면 어디서든 대왕암이 보이는데, 특히 봉길대왕암해변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가장 아름답다. 해변에 서서 바다 건너 대왕암을 바라보면, 신라 천년의 역사가 바다 위에 떠 있는 듯한 감동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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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한국관광공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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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한국관광공사(다님 9기 서인호) |
봉길대왕암해변은 문무대왕릉을 가장 가까이에서 감상할 수 있는 장소다. 모래사장을 따라 이어진 산책길은 경사가 완만해 남녀노소 누구나 걷기 좋으며, 바닷바람을 맞으며 천천히 걸을 때마다 파도의 리듬과 함께 역사적 사색이 더해진다. 관광객이 많지 않아 조용히 머물기 좋고, 파도 소리와 바람이 만들어내는 배경음이 힐링 그 자체다.
이곳은 자연과 신화가 공존하는 신비로운 여행지다. 대왕암을 중심으로 펼쳐진 푸른 동해와 흰 파도, 그리고 저 멀리 이어지는 수평선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해가 질 무렵이면 붉은 노을이 바다를 물들이며, 바위 위에 앉은 문무왕의 영혼이 지금도 나라를 지키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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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길대왕암해변 | 사진 = 한국관광공사(다님 9기 서인호) |
문무대왕릉 주변에는 탐방로와 전망대가 잘 정비되어 있어 산책하듯 둘러보기 좋다. 인근에는 신라시대 해안방어의 흔적이 남아 있는 감은사지와, 대왕암이 잘 보이는 전망 포인트도 마련되어 있다. 경주 시내의 불국사나 석굴암이 신라의 정신적 유산이라면, 문무대왕릉은 그 신념이 바다로 확장된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입장료와 주차비 모두 무료로, 누구나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다. 주차장에서 도보로 5분이면 해변에 닿고, 이곳에서 바로 대왕암을 바라볼 수 있다. 조용한 아침에 찾으면 바람과 파도소리만 들리는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문무왕의 유언이 전해지는 듯한 울림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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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한국관광공사(경상북도청) |
천년의 시간을 품은 신라의 바다, 그리고 그 위에 잠든 한 왕의 의지. 문무대왕릉은 역사적 가치와 더불어 자연의 경이로움을 동시에 품은 장소다. 바다와 신라가 만나는 그 경계에서 지금도 용의 전설은 이어지고 있다.